생각을 HIT | 말장난으로 만든 호재는 모래성일 뿐

코로나19 한가운데를 지나던 몇해 전 의약품 품절 및 생산 문제와 관련한 취재를 하던 오후 사무실로 전화가 걸려왔다. 50대 후반 목소리로 짐작되는 여성은 다짜고짜 온갖 욕설을 퍼부었다. 진정시키려 애쓰던 중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러니까 기자님이 ㅇㅇ제약 좋은 기사 좀 써봐요."
코로나19 당시 '신데렐라'로 불렸지만 하락세와 악재가 겹친 모 회사와 관련한 이야기였다. '좋은 기사가 될 만한 소재가 있어야 쓴다. 있으면 말 해달라'고 상투적인 답변을 하던 중 는 울먹였다.
"잘 써줘야 내가 살아. 나랑 친한 아줌마가 있는데 자기 남편 퇴직금 몇 억을 다 거기다 쏟아 부은 거야. 근데 반토막 나니까 그 아줌마가..."
오늘은 '공시' 이야기다. 미국ㆍ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쟁이 우리나라 활황 증시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 한 주 전만 해도 투자 분위기는 최고조 였다.
주가 부양을 위해 제약바이오 기업들도 호재성 메시지를 쏟아내는 와중에 '텀싯 체결'이라는 용어가 목에 가시처럼 걸렸다.
텀시트(Term Sheet)는 '이렇게 하자고 논의와 조건을 정하는 문서'인데 여기에 체결이라는 말을 붙이면 뭔가 있는 듯한데 실제는 뭐지?하는 모호성이 생긴다. 하지만 제약바이오업계와 일부 언론은 그대로 받아 적는다. 계약에 가까워진 텀시트가 있긴 하지만 본계약 전 논의사항을 회사가 체결하는 것은 납득할 수 없다. 그런데도 아무렇지 않게 이 표현이 나돌고 호재성 소재로 주가는 영향을 받는다.
최근 S제약은 실 계약금이 508억원인데, 시장 규모 5조3000억원을 앞세워 홍보했다. 이 회사는 수많은 특허로 둘러싸인 비만치료제 '위고비'의 경구용 제형을, 국제 특허 하나 등록되지 못한 플랫폼으로 해결했다고 홍보했다. 경구제형 개발의지로부터 성공에 이르기까지 기간은 가늠하기조차 힘든 것이 의약품 개발의 실상이다.


단어의 의미를 회색지대 안에서 비틀어가며 어떻게든 좋은 말만 적어 주주의 눈치를 피하려 하는 IR팀은 물론 코로나19 이후 PR의 자리까지 비집고 들어오며 '판돈을 키운' IR 대행사, 그리고 주가 상승을 바라는 경영진의 모습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주주에게 공개해야 하는 정보는 돌려 말하고 정작 취재나 투자자의 매서운 질문이 들어오면 'PR에게 연락해보라' 혹은 '우리는 IR 대행만 하니 알지 못한다' 그도 아니면 '대외비라 알려드릴 수 없다' 는 이들의 답변과 행태를 무엇이라 칭해야 좋을까.
그런 업계가 자사주 매각을 피하며 '나를 해치지 않을 회사들'에는 서로의 주식을 교환하며 방어기제로 삼고, 시리즈A 투자를 받았다고 대표의 법인차를 연두색 번호판의 고급 세단으로 바꾸는 행동은 투자자들에게 어떻게 비칠까.

이재명 정부가 그토록 경계했던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기업의 경영구조 즉 거버넌스와 내수 부동산 시장 과열을 문제삼고 있다. 실제 다주택자의 양도소득세 과세 유예 종료를 시작으로 투자 시장으로 자본을 이동시키고 1년 새 3번이나 상법을 개정하며 거버넌스를 바꾸려는 이 노력은 한국 증시에 전례없는 지수를 선물했다.
그러나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에 따른 '6000피'(코스피 지수 6000) 등극까지 상승 곡선은 제약바이오업종의 곡선과 궤를 달리한다. 그저 방산에, 반도체에, 태양광에, 이차전지에 돈이 몰려서는 아니다. 코로나19 최대 수혜 분야로 각광받으며 성장한 제약바이오업종이 상승세에 올라타려면 정직한 정보 제공이 절실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