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단백질 설계도 자르거나, 고쳐쓴다
핵심은 '안전한 약물 전달'...뇌·근육까지 배송될까?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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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제약 시장에서 유전자 발현을 조절하는 RNA 기술에 대한 투자가 급성장하고 있다. 질병 단백질을 억제하는 수준을 넘어서 단백질을 만드는 '유전자 설계도' 자체를 제어하겠다는 전략이다.

20일 업계에 따르면 일라이 릴리, 노바티스 등 글로벌 빅파마들이 차세대 성장 동력으로 RNA 플랫폼을 낙점하고 공격적인 M&A와 기술 도입에 나서고 있다.

지난해 노바티스는 근육 조직 siRNA 전달 기술을 보유한 어비디티바이오사이언스를 약 120억달러(약 17조원)에 인수했고, 브리스톨 마이어스 스퀴브(BMS) 역시 RNA 기반 치료제 기업 오비탈 테라퓨틱스를 15억달러(약 2조원)에 인수했다. 가장 최근에는 마드리갈 파마슈티컬스가 MASH 치료제 개발을 위해 중국 리보 라이프 사이언스에서 6개의 siRNA 프로그램을 최대 44억달러 규모에 도입하며 시장의 관심을 보여줬다.

 

잘못된 설계도 잘라주는 'siRNA'

siRNA는 2006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다소 오래전 연구된 치료 기법이다. 일반적인 약이나 항체 치료제는 몸속을 떠다니고 있는 '질병 단백질'을 찾아가 기능을 정지시킨다. 문제는 우리 몸속 단백질의 80% 이상이 약이 달라붙을 자리가 없는 이른바 '언드러거블(Undruggable)' 영역이라는 점이다.

반면 siRNA는 단백질이 만들어지기 전 단계인 mRNA를 직접 타격한다. 공장에서 불량 제품이 나온 뒤에 수거하는 방식이 아니라, 아예 공장에 있는 설계도 자체를 파괴해 제품 생산을 원천 봉쇄하는 원리다.

과거 RNA는 인체 효소에 의해 쉽게 파괴되거나 세포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치명적 약점이 있었으나, 간세포 수용체(ASGPR)에 선택적으로 결합하는 갈낙(GalNAc) 기술과 약물을 세포막 안으로 밀어 넣어주는 지질나노입자(LNP) 기술 등 'RNA 전달' 기술이 발전하면서 siRNA는 비로소 치료제로서 가치가 입증됐다.

 

뇌와 근육까지 전달, 배송 시스템 확보 경쟁

현재 빅파마들이 수조 원을 들여 확보하려는 것은 siRNA 물질 그 자체라기보다 이를 원하는 장기까지 안전하게 배달하는 '배송 시스템'이다. 유전자 서열만 바꿔 끼우면 고혈압 치료제가 고지혈증이나 비만 치료제로 변신할 수 있는 등 무한 확장 플랫폼이기 때문이다. 현재 간세포를 타깃하는 기술은 상용화 궤도에 올랐으나, 업계의 시선은 이미 그 너머인 '간 이외 조직(Extra-hepatic)'을 향하고 있다. 뇌혈관장벽(BBB)을 통과하는 기술이나 근육 조직으로의 전달 기술 보유 여부가 향후 중추신경계(CNS)와 희귀 질환 시장의 주도권을 결정지을 전망이다.

실제로 다수의 글로벌 기업이 이 영역에 사활을 걸고 있다. GSK는 유전자 표적 siRNA 치료제 'GSK'990'의 임상 2상에 돌입했으며, 마드리갈 역시 도입한 물질들의 임상시험계획(IND) 진입을 2026년으로 예고하며 거대 만성질환 시장으로의 재편을 가속화하고 있다.

 

K-바이오, 분해부터 교정까지 독자적 기술력 과시

국내 기업 중에서는 올릭스가 siRNA 분야에서 독자적인 'asiRNA' 플랫폼을 구축했다. 기존 대칭형 구조 대비 오프 타깃(비특이적 결합) 부작용을 줄이는 데 최적화된 기술이다. 주력 파이프라인 'OLX702A'는 간 대사에 관여하는 MARC1 유전자를 억제하는 기전으로, 일라이 릴리에 총 6억3000만 달러 규모로 기술 수출됐다. 최근에는 프랑스 벡토루스와 협력해 뇌 조직 전달 기술을 시험하며 중추신경계(CNS) 영역까지 파이프라인을 확장 중이다.

에이비엘바이오는 siRNA 자체 개발보다 전달 기술의 범위를 확장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자사의 이중항체 셔틀 플랫폼인 '그랩바디-B'를 활용해 뇌혈관장벽(BBB)을 통과, siRNA를 뇌 중심부까지 배달하는 기술력을 보유했다. 최근 아이오니스와 공동 연구를 통해 근육과 뇌 조직 전달 효율을 입증하며 빅파마들에게 매력적인 파트너로 자리매김했다.

한편 앞선 기술보다 한 단계 더 진화한 'RNA 교정(편집)' 기술도 강력한 축으로 떠오른다. 문제가 있는 염기서열만 잘라내고 정상 서열로 갈아 끼우는 '치환' 방식이다. 알지노믹스는 자사의 '트랜스-스플라이싱 라이보자임' 플랫폼을 통해 일라이 릴리와 최대 1조 9000억원 규모의 공동 개발 계약을 체결했다. 유전성 난청을 시작으로 간암, 알츠하이머 등 난치성 질환으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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