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가 인하 중심의 개편 기조에 업계 "2012 데자뷔, 혁신보상 재설계 시급"

임상 및 기술적 진보를 달성한 국내 개발 신약들의 혁신가치를 현행 약가제도가 제대로 보상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국내 약가가 낮게 책정되면서 해외 참조가격에영향을 미쳐 수출 경쟁력을 떨어 뜨린다는 비판이다.

최근 정부가 제네릭 약가 산정률 조정 등을 포함한 건강보험 제도 전반에 대한 개편을 추진하면서 제네릭 가격을 인하하는 대신, 신약 개발 기업에 대한 보상 체계를 강화해 국내 제약사의 신약 R&D 투자를 촉진하겠다는 방침을 밝혔지만 국내 개발 신약에 대한 미진한 약가보상을 이미 경험한 산업계의 반응은 회의적이다.

게다가 2012년 14~18% 수준의 '약가 일괄인하' 조치로 수익성 급감에 따른 R&D 차질을 겪은 바 있는 산업계 입장에서는 정부의 이번 약가제도 개편 기조에서 ‘데자뷔’를 읽을 공산이 크다.

실제 국산신약 34호인 대웅제약 '펙수클루'와 37호인 제일약품 '자큐보'가 국내외에서 P-CAB 계열 시장을 확장해 나가고 있지만 혁신성에 대한 충분한 약가우대 보상을 받지 못한 것이 대표적 사례이다. 펙수클루는 939원, 자큐보는 910원으로 선발 국산신약인 HK이노엔 케이캡의 약 70% 수준에 그쳤다.

2024년 3월, 혁신형 제약기업이 개발한 신약에 대해 약가 우대 제도가 신설됐지만, 그 전에 등재된 펙수클루와 자큐보는 이 제도의 혜택을 받지 못했다. 이로 인해 펙수클루는 중국에서 한국 약가의 영향으로 현재 900원대에 팔리고 있다. 반면 케이캡과 다케다제약의 보신티는 2000원대에 처방된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펙수클루나 자큐보 사례를 보면 제네릭 약값을 깎아 신약의 혁신성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겠다는 정부의 방침을 신뢰할 수 있겠냐"며 "기업 수익성에 대한 인위적 통제의 범위와 혁신 결과물에 대한 적정 보상이 균형을 맞추는 방향으로 가야, 산업 전체의 성장동력을 정부가 약화시켰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고 말했다.

지속적인 약가인하 정책은 '코리아 패싱' 현상까지 불러오고 있다. 미국제약협회(PhRMA)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전 세계에서 개발·허가된 408개 혁신 의약품 중 한국에 도입된 치료제는 약 35%에 그쳤다. 해외 출시 후 한국 도입까지 평균 2년 소요되며, 출시 첫 해 국내 도입되는 비율은 5% 수준인데 OECD 평균은 약 18%였다. SK바이오팜이 개발한 뇌전증치료제 '세노바메이트'는 미국·유럽에서 먼저 출시됐다. 해외 출시 6년 만에 거꾸로 국내 출시 준비 중인 이 약은 미국에서 5~6만 원대, 유럽에서 7000~9000원대에 판매된다. 한국의 약값은 얼마일지 코리아 패싱 관점에서 주목된다.

한국의 낮은 약가 수준은 글로벌 참조가격제 속에서 해외 약가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한국이 중국(2018), 사우디아라비아(2013), 캐나다(2019) 등 주요 국가의 참조가격국으로 지정되면서, 국내에서 낮게 책정된 가격이 해외에서도 그대로 반영되는 구조가 고착화되고 있다.

그 결과 국내 개발 신약이 해외에서도 낮은 가격을 받을 가능성이 커져 수출 경쟁력이 떨어지고, 이는 다시 국내 판매 가격 압박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초래한다. 이러한 흐름이 지속될 경우 혁신 신약의 국내 출시가 더욱 늦어지고, 국내 환자가 치료 혜택을 가장 늦게 누리는 상황까지 벌어질 수 있다.

전문가들은 "약가제도는 비용 통제를 넘어서 국가 산업전략과 혁신 철학을 반영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국산 신약이 글로벌 시장에서 정당한 가치를 인정받기 위해서는, 혁신을 의료비 절감 대상이 아닌 국가적 자산으로 보고 보상하는 방향으로 제도가 재설계돼야 한다고도 짚었다.

이번 정부의 결정에 한국제약바이오협회는 '산업 발전을 위한 약가제도 개편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해 정부와 협의를 준비 중이다. 비대위는 "추가 약가 인하는 R&D 투자와 제조 기반을 약화시키고, 고가 수입약 의존도를 높여 보건안보를 흔들 수 있다"며 "재정 절감 중심이 아닌, 산업 생태계와 혁신 보상 구조를 함께 고려한 합리적 조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AD 실시간 제약시장 트렌드, 데이터로 확인하세요. 제약산업을 읽는 데이터 플랫폼 BRP Insight

관련기사

저작권자 © 히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