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
현장과 괴리된 제도, 산업 생태계 복원 없이는 보건안보도 없어
보건복지부가 최근 제약사를 대상으로 국산 원료의약품 사용 현황 조사에 나섰다. 국산 원료 사용을 장려하기 위한 조치지만, 실상은 국정감사에서 '정책을 만들고도 신청이 단 한 건도 없다'는 지적에 따른 뒤늦은 대응으로 보인다.
실제 이번 국정감사에서 백종헌 의원은 국내 원료의약품 자급률은 2022년 11.9%, 2023년 25.6% 수준에 그친다고 지적했다. 절반 이상이 중국과 인도에 의존하는 구조가 고착화된데다, 팬데믹이나 지정학적 갈등이 발생하면 필수의약품조차 공급이 중단될 수 있는 취약한 구조다.
정부는 심각성을 인지하면서도 사실상 손을 놓고 있었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국산 원료 사용 시 약가를 우대하겠다는 정책이 시행 7개월이 지나도록 참여 기업이 없다는 사실이 이를 방증한다.
이유는 단순하다. 현장의 현실과 동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복지부가 정한 국산 원료 인정 기준은 지나치게 까다롭고, 원료 합성 단계부터 대부분 과정을 국내에서 수행해야만 인정받는다. 완제의약품 기업은 약가우대라는 혜택이 있지만 원료기업을 유인할 요소는 찾아보기 힘들다. 원료 기업이 움직이지 않는다면 완제 기업도 국산 원료 의약품을 사용한 제품을 만들 수 없다.

국감에서 이니스트에스티 한쌍수 대표는 "국내 원료는 대부분 중국과 인도에 의존하고 있으며, 변수 하나만 생겨도 산업 전체가 흔들린다"고 토로했다. 그가 지적한 산업의 병목은 명확하다. 생산 규모의 한계로 인한 가격 경쟁력 부족, R&D 투자 지원 부재, 국제 규제 대응 역량의 미흡. 이는 하루아침에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그런데 최근 열린 보건산업진흥원과 원료의약품 간담회에서는 또다시 익숙한 장면이 반복됐다는 후문이다. 정부는 지원사업을 언급하며 개발비 2억원, 완제사 지원 1억원 규모의 단기 과제만 제시한 것으로 알려진다. 업계 관계자들은 "예산을 조금씩 나눠갖는 일회성 사업에 그치는 것"이라며 "현장의 어려움을 이해하지 못한 보여주기 행정"이라고 비판했다.
국산 원료 산업은 단순한 산업 육성의 문제가 아니다. 보건안보이자 국가 전략의 문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얼마나 지원금을 나눠줄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지속 가능한 산업 생태계를 만들 것인가'에 대한 로드맵이다. 전략 품목을 지정하고, 장기 수요를 보장하며, 원료기업에 실질적인 투자와 세제 인센티브 제공하는 방안을 심도있게 들여다 봐야 한다. 제약산업의 근간인 원료의약품 산업이 무너진다면, 그 피해는 국민 건강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실질적인 정책을 수립하기 위한 해답은 현장에 있다. 현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국산 원료의약품 자급화는 단기 성과로 포장할 사업이 아니다. 제대로 된 산업정책이 필요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