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는 제도 개편 속속 시행…한국은 여전히 검토·예고 단계

국내 임상시험 경쟁력이 약화되는 가운데 정부가 돌파구로 '2030년 글로벌 3위 도약'을 내걸었다. 그러나 해외 주요국이 절차 간소화를 통해 속도를 높이는 가운데, 한국은 여전히 대안 논의 단계에 머물러 있다는 점에서 한계가 드러나고 있다.
지난 5일 대통령 주재로 열린 '바이오 혁신 토론회'에서 정부는 2030년까지 한국을 글로벌 임상시험 3위 국가로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를 밝혔다. 규제 완화, 심사 기간 단축, 분산형 임상 도입 등이 핵심 추진 전략으로 제시됐다. 이는 최근 국내 임상시험 순위 하락과 글로벌 경쟁 심화에 대응하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정부는 이번 토론회에서 임상시험 승인 절차와 제출 자료를 간소화해 진입 장벽을 낮추고, 바이오시밀러 임상 3상 요건 완화를 본격화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심사 인력을 확충하고 AI 기반 허가 심사 시스템을 도입해 전체 소요 기간을 기존보다 4개월 이상 줄인다는 방침을 제시했다.
정부가 이러한 목표를 제시한 데는 최근 한국 임상시험의 글로벌 위상 약화가 자리한다. 국가임상시험지원재단에 따르면 지난해 제약사 주도 임상시험에서 한국의 글로벌 점유율은 3.46%로, 전년도 4위에서 6위로 두 계단 하락했다. 서울 역시 도시 순위에서 베이징에 밀려 2위로 내려앉았다. 단일국가 임상시험 점유율은 여전히 3위를 유지했으나, 다국가 임상시험 점유율은 3.13%로 떨어지며 순위가 10위에서 11위로 밀렸다.

업계는 이러한 하락세의 원인으로 의료 현장의 구조적 문제를 지목했다. 의대 정원 확대를 둘러싼 갈등, 대학병원 의료진의 피로 누적이 임상 수행 역량 저하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특히 대형병원 연구자의 업무 과중과 환자 모집 지연은 곧바로 임상 경쟁력 약화로 연결된다.
여기에 중국의 부상도 뚜렷하다. 중국은 대규모 환자 풀과 저렴한 비용을 무기로 글로벌 제약사들의 주목을 받고 있으며, 최근에는 규제까지 속속 완화하며 임상시험 강국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과거 한국이 임상시험 허브로 불렸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는 위기의식이 번지고 있다.
이처럼 한국의 입지가 흔들리는 사이, 주요국은 임상시험 속도를 높이기 위해 과감한 제도 개편에 나서고 있다.
한국바이오협회 바이오경제연구센터가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인도 보건부는 8월 28일 관보를 통해 신약 및 임상시험 규칙 개정안을 발표했다. 기존 승인제도를 '통보제'로 바꿔, 일부 고위험 약물을 제외하면 신청자가 별도의 승인 없이 임상을 개시할 수 있도록 했다. 처리 기간도 기존 90일에서 45일로 단축된다. BA/BE(생체이용률·생물학적 동등성) 연구 역시 일부 범주에서 라이선스 요구 사항을 생략하고 단순 통보만으로 진행할 수 있게 될 전망이다.
영국 역시 내년 4월부터 특정 자격을 갖춘 기업은 규제기관(MHRA)에 별도 승인 신청 없이도 임상 변경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를 시행할 예정이다.
덴마크 의약품청은 올해 8월부터 모든 단일국가 임상 1상 및 1~2상 신청을 14일 이내에 승인 여부를 통보하고 있다.
중국 국가약품감독관리총국(NMPA)은 지난 6월 임상시험 승인 대기기간을 60일에서 30일로 단축할 것을 제안했으며, 이 제안이 확정되면 미국 FDA와 같이 '30일 내 이의 없으면 자동 승인' 체계가 적용된다.
이처럼 해외 주요국들이 앞다퉈 절차 단축과 규제 완화에 나서며 신속성을 강화하고 있는 반면 한국은 여전히 뚜렷한 제도 개편이 실행되지 않고 있다.
한국도 제도 개선 작업을 준비하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지난 4월 정책설명회에서 올해 임상시험 승인제도 개선방안을 통해 승인 기간 단축을 검토하고 있으며,신약 심사 기간을 기존 420일에서 295일로 줄이는 방안도 추진 중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이번 혁신 토론회에서도 재차 거론됐지만, 아직까지 구체적 실행 계획은 나오지 않았다.
보건복지부 역시 지난 7월 종합 대책을 예고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하반기 중 임상시험 제도를 개선하기 위한 종합적인 정책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라며 "인력 양성 등을 포함한 대안을 내놓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관련해 구체적인 실행 계획이나 일정은 아직 제시되지 않았다.
정부의 이번 목표 설정은 국내 임상시험 산업에 방향성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하지만 이미 제도를 시행하거나 확정한 국가들과 보조를 맞추려면, 한국 역시 개선 작업의 속도를 높이고 실제 현장에서 작동할 수 있는 종합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선언적 목표가 실제 성과로 이어질 수 있을지는 앞으로의 실행력에 달려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