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선별등재제도 후 약가 제도 변천사와 보완점
"경제성평가는 신약 등재 도구, 그 자체로 목적 아냐"

 혁신신약을 대하는 대한민국 정부의 속마음 

[끝까지HIT 8호] 건강보험 당국은 '혁신신약에 대한 환자 접근성 강화'를 정책 목표로 줄곧 내세워 왔다. 그러나 정작 공급 및 수혜 당사자인 기업과 환자들은 정부의 목표 실행 의지에 회의적이다. 과거보다 접근성이 개선된 것은 인정하면서도 여전히 간극이 크고, 무엇보다 혁신신약 가치에 대한 반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의견이다. 물론 최근 정부가 업계와 머리를 맞대고 논의한 끝에 혁신가치 보상안을 내놓았지만 해당 제도의 실효성에는 의문을 표한다. 업계의 우려처럼 한국은 혁신신약 도입의 두세번째 옵션으로 전락할 것인지, 환자들은 우회로에서 치료의 기적을 찾아 계속 헤매야 하는지 그 해답을 추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대신 신약과 접근성, 이 두 단어의 거리가 왜 생각만큼 좁혀지지 않는지 그 연원을 찾아본다. [편집자주]

① 신약과 환자 사이, 얼마나 가까워졌나
② 기고 | 고수경 김앤장법률사무소 전문위원

고수경 김앤장법률사무소 전문위원
고수경 김앤장법률사무소 전문위원

제도 변천사로 보는 신약 약가 제도 이해

선별등재제도 도입(2007년)이라는 신약의 약가 제도에 큰 획을 긋는 변화가 일어난 지도 벌써 17년이 돼 간다. 선별등재제도는 약제비 적정화 방안의 일환으로 도입됐다.

이전에는 신약은 허가되면 급여되는 게 당연했지만, 제도 도입에 따라 임상적 유용성과 경제성을 입증한 약만이 ‘선별’돼 급여될 수 있게 됐다. 해외 약가를 참조해 산정되던 의 약품 가격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하 심평원)에 의한 의약품의 치료적·경제적 가치 평가와 국민건강보험공단(이하 건보공단)과의 약가 협상을 통해 정해지게 됐다. 보험 등재를 신청하는 모든 의약품은 기등재돼 있는 의약품에 비해 임상적 유용성의 개선 정도를 바탕으로 한 경제성 평가자료를 제출하도록 의무화됐다.

임상적 유용성이 기등재 약제와 유사한 경우 비용이 저렴하면 경제성이 있다고 판단되며, 임상적 유용성이 기등재 약제보다 개선된 경우 '점증적 비용-효과비(이하 ICER, Incremental Cost-Effectiveness Ratio-효과 차이와 비용 차이의 비)'로 경제성을 판단한다. 이 때, 비교하려는 기등재 약제가 무엇인가에 따라 비용 차이와 효과 차이가 달 라지고, 어떤 지표로 효과 차이를 평가하는가에 따라 제출해야 하는 자료도 달라진다. 

심평원의 경제성 평가 지침은 '질보정수명(이하 QALY, Quality-Adjusted Life-Years Gained)'으로 효과 차이를 평가하는데, 대부분의 임상시험은 혈당 감소, 혈중 지질 수치 감소, 무진행 생존기간 연장 등의 중간 지표로 신약의 효과를 보고하고 있어 경제성을 인정받지 못한 사례가 상당히 있었다.

특히 염을 변경하거나 제형을 변경한 자료제출의약품 및 비교 약제 대비 가격이 저렴한 경우에도 경제성 평가 자료를 제출해야 하는 상황은 업계에 매우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이에 따라 대체 약제 대비 비용이 저렴한 경우에 경제성 평가 자료 제출을 하지 않고도 등재할 수 있는 '대체 약제 가중평균가 제도(이하 가중평균가 제도)'가 도입됐고(2010년), 자료제출의약품에 대한 산정 규정이 도입되게 됐다. 가중평균가 제도에서 신청 약가가 대체 약제 대비 고가인 경우 비급여로 평가되지만, 가중평균가 수용 조건 하에 급여로 인정된다.

또 가중평균가를 수용한 약제의 경우 보험재정에 영향을 미치지 않으므로 약가 협상 생략의 필요성이 제기됐지만, 약가 협상 생략의 조건으로 가중평균가 90%(일반 약제)~100%(희귀질환 치료제, 생물의약품) 수용 조건이 동반되면서 대부분의 약제는 가중평균가의 90% 수준에서 등재되게 됐다.

대체 약제가 있는 의약품들의 상당수가 가중평균가 트랙으로 급여가 이뤄지게 됐지만, 가중평균가가 너무 낮게 형성돼 있는 경우 신약의 적정 가치를 인정받기 위해서는 여전히 QALY를 효과지표로 한 경제성 평가자료를 제출할 수밖에 없었는데, 항암제나 희귀질환 치료제의 경우 경제성 입증에 어려움이 있어 건강보험 등재가 제한됐다. 중증의 암환자 혹은 희귀질환 환자들은 삶의 질이 낮기 때문에 동일한 생존기간을 연장하고도 경증 질환 환자에 비해 QALY 개선은 적게돼, ICER 값이 보험당국이 정한 수용한도(ICER threshold)를 만족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이에 신약의 적정 가치를 반영하기 위해 질환의 중증도, 사회적 영향 등을 고려해 ICER threshold를 상향하는 제도 개선이 이뤄져 항암제의 경우 2GDP(5000만원)/QALYs 내외에서 경제성이 인정되게 됐다(2013년). 이후에도 ICER threshold 추가 상향 조정과 관련한 업계의 요구들이 지속됐으며, 기존 심의 결과를 참고해 탄력적으로 평가하도록 규정이 개정됐다.

ICER 상향 조정과 함께 선별등재제도의 원칙을 살리면서도 대체제가 없는 고가 항암제 등에 대한 환자의 접근성을 제고할 목적으로 '위험분담제도(2013년)'가 도입됐다.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가 약가를 참조하는 국가로서 우리 약가가 낮아지면 글로벌 비즈니스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 신약의 국내 공급이 어려운 경우가 종종 있었다. 위험분담제 하에서 신약의 효과나 보험재정 영향 등에 대한 불확실성을 제약사가 일부 분담하는 방법, 즉 표시 가격과 실제 가격의 차이를 환급하는 방법을 통해 표시 가격을 높일 수 있기 때문에, 다른 나라에서 우리나라의 약가를 참조함으로 인한 국내 미도입 리스크를 줄이고 환자의 접근성 향상에 기여하게 됐다.

위험분담제는 도입 당시에는 생존을 위협하는 암질환 및 희귀질환 치료제에 한정됐지만, 이후 의미 있는 삶의질 개선을 가져오는 난치성 질환 치료제로까지 적용 범위가 확대됐다. 또 후발 약제에 대한 위험분담제 미허용으로 인해 의도치않게 위험 분담이 적용된 선발 약제가 해당 적응증을 독점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함에 따라 후발 약제도 위험분담제를 적용하는 방향으로 제도가 개선됐다.

위험분담제 도입으로 선별등재제도 이후 비급여 상태였던 다수의 항암제가 등재되는 효과를 가져왔지만, 경제성 평가에 필요한 직접 비교 임상 3상 자료의 생성 자체가 어려운 희귀질환 치료제의 경우 여전히 급여되기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에 환자수가 극히 적어 근거 생성이 어렵거나 대조군이 없는 임상으로 허가받은 약제 등에 대해 경제성 평가자료 제출을 생략하고, 제외국 조정 최저가 이하에서 경제성을 인 정하는 제도(2015년, 이하 경평 생략)를 도입했다.

신약등재 제도 변천사 

경평 생략 제도는 도입 당시에는 생존을 위협하는 암질환 및 희귀질환 치료제에 한정됐지만, 이후 임상 설계상 우월성 입증이 어려운 항균제(2021년) 및 소아에서 삶의 질 개선을 입증한 경우(2022년) 등으로 확대됐다.

 

신약등재 제도변화 긍정적이지만 변화 필요성 커

이상에서 2007년 이후 최근에 이르기까지 신약 약가 제도의 변화 과정을 간략하게 살펴봤다. 많은 긍정적인 변화가 있었음에도 여전히 다음과 같은 내용들에 대한 제도 개선의 요구가 업계에서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는 것으로 이해된다.

대체 약제가 없어도 항암제나 희귀질환 치료제가 아니면 경제성 평가자료를 제출해야 하고, 위험 분담 적용을 받을 수 없다. 만성질환 치료제의 대부분은 중간 지표에서 탁월한 효과를 나타냈어도, QALY 개선을 입증하기 어려워 경제성 평가 대상이 되지 못한다. 대체 약제의 가격은 각종 사후관리로 인해 계속 낮아지고 있기만 한데, 신약의 급여는 과도하게 낮아진 대체 약제와 비교한 경제성이 입증돼야 가능하다. 경평 생략으로 등재되는 약제는 환자수 요건이 점점 엄격해져 극희귀질환에 준하는 경우에나 가능해지고 있다. 위험분담제로 등재된 약제는 5년 간격의 재평가 과정에서 신약에 준하는 평가과정을 거치면서 일반 약제에 비해 약가 인하 기전이 추가되는 결과를 가져오고 있다.

환자의 접근성 개선을 가져오는 방향으로 끊임 없이 크고 작은 변화들이 있었지만, 제도 보완에 대한 요구는 줄어들지 않았다. 보험재정과 보장성 강화라는 2가지 목표를 달성해야 하는 정부당국 입장에서는 약가 제도 개선에 많은 고려가 필요할 수밖에 없으므로 제도가 점점 복잡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서는 여러가지 방법이 있을 수 있겠지만, 경제성 평가를 통한 신약의 가치 평가를 QALYs에 한정하기보다는 그 외 다양한 평가요소를 추가하는 방법이 고려될 필요가 있다. 예를 들면 다양한 중간 지표를 이용한 간소한 경제성 평가 방법, 경제성 평가를 수행하기 어려운 경우에 재정영향에 대한 협상만으로도 등재하는 방안 등이다. 경제성 평가는 신약의 등재를 위한 도구일 뿐, 경제성 평가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는 점에서 출발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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