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난 헬스 이노베이션 파크 탐방기]
캠핑장도, 해변도 있다? 열정과 휴식의 생태 공간

쇼난 헬스 이노베이션파크 전경.
쇼난 헬스 이노베이션파크 전경.

[일본 가나가와] 일본인에게 ‘쇼난(湘南)’이라는 단어를 물으면 여름, 바다 등을 떠올리는 이가 많다. 도쿄에서 한 시간 거리의 해변가가 늘어선 휴가철 여행지인 데다가 국내에도 친숙한 만화 '슬램덩크'의 배경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약업계 관계자에게 쇼난은 신약 개발 클러스터 '쇼난 헬스 이노베이션 파크(아이파크)'가 먼저 생각날 법하다.

다케다의 쇼난연구소 개방 이후 5년, 이 곳은 신약 개발부터 인공지능(AI)에 이르기까지 자국 내 최대급 민간 클러스터로 자리잡고 있다. 그리고 그 핵심에는 '이어짐'을 강조하는 그들의 생각이 담겨 있다. <끝까지 HIT>는 지난 8월 국내 언론사 중 처음으로 쇼난 아이파크를 탐방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신칸센이 쏙 들어가는 큰 신약 단지

약 개발하다 고기도 구워먹는다고?

[끝까지HIT 7호] 가나가와현 후지사와역에서 내려 택시로 10분 여를 달려 도착해 아이파크를 본 순간 제일 먼저 나온 한마디는 '크다'였다. 지하철을 타다 보면 바로 알 수 있을 정도의 큰 규모(철로 옆에 일자로 펼쳐져 있기 때문)로 구성된 쇼난 아이파크는 부지면적 22만㎡에 연면적 30만6000㎡다. 잠실야구장 연면적(4만5000㎡)의 7배가 넘는 어마어마한 구조다. 내부에는 400개의 사무공간과 1500실 이상의 연구실이 구축돼 있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복도의 길이다. 끝과 끝을 걷는데만 400m 이상에 달한다. 운영회사인 쇼난 아이파크 인스티튜트 직원들이 너스레처럼 말하는 신칸센이 들어가는 사이즈라는 말이 허언이 아닌 셈이다. 이렇게 복도를 처음부터 길게 만든 것은 한 공간 안의 연결성을 강조하기 위해서라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쇼난 아이파크는 끝에서 끝까지 걸어가는 데만 약 8분여의 시간이 걸릴만큼 제법 길다.
쇼난 아이파크는 끝에서 끝까지 걸어가는 데만 약 8분여의 시간이 걸릴만큼 제법 길다.

문을 열면 CS타워를 시작으로 총 5번 타워까지 5개의 건물이 이어져 있고, 사무시설과 연구시설 역시 동선이 이어져있다. 연구실 역시 실험 영역마다 '드래프트 챔버'를 표준으로 장착하고, 합성 실험실 및 분석 장비를 갖췄다. 생화학실험을 위한 공용시험실은 'P2/BLS2' 수준을 갖췄고, 총 24개의 핵종을 사용할 수 있는 방사성 동위원소(RI) 화합물 실험도 가능하다.

회원사에게 열려있는 개방형 실험실
회원사에게 열려있는 개방형 실험실

이 밖에도 벤처기업 및 대기업이 활용할 수 있도록 시설의 유지 및 보수를 맡는 동시에 세포 제조 설비(CPC) 등 바이오 의약품 개발에도 업체가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시설 정비도 추진하고 있다. 

편의시설 내에는 50개 이상의 홀과 회의실을 갖춰놓는 한편, 약 750석의 규모가 큰 식당과 내부 카페, 편의점 등 기본적인 시설 외에 필요시 회식이 가능한 수준의 바와 건물안에서 밖을 관찰할 수 있는 테라스와 아이가든(i가든) 등까지 갖춰져 있다. 신약 클러스터라는 공간 안에서 바비큐 파티를 할 수 있는, 한국에서는 익숙치 않은 광경이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상호 소통을 위한 소셜 플레이스였다. 일반적인 개방형의 의자와 탁자가 있는 구조 외에도 실내에 텐트와 캠핑용 의자를 설치해 마치 밖에 있는 듯한 기분으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을 시작으로, 하늘색과 흰색으로 칠해진 목재를 사용하고 해먹까지 놓아 마치 바닷가를 연상시키는 공간, 일본인에게 친숙한 다다미(짚 등으로 만들어진 깔개로 장판 역할을 한다)와 고타츠(테이블 아래에 온열기를 넣고 테이블 사이에 이불을 넣는 보온용 책상)까지 놓아서 마치 집에서 일을 하는 듯한 공간, 빈백(작은 비즈 형태의 스티로폼이 들어가 몸의 모양을 그래도 받쳐주는 의자)으로 반쯤 누운 듯한 포즈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공간까지 있다.

각 공간에 콘셉트를 준 것은 입주한 이들이 '편안한 공간'에서 신약 개발의 아이디어를 나누도록 하기 위해서라는 게 아이파크 측의 설명이다(이 날 해변가 콘셉트의 공간에서 진행된 후지모토 도시오 사장 인터뷰 중에는 입주사의 회의가 옆에서 열릴 만큼 자유로운 분위기가 돋보였다).

 

다케다가 열어놓은 신약 개발의 장 
'모두의 연구소'로 거듭나기까지

이같은 큰 시설이 처음 만들어진 것은 지난 2011년. 다케다약품공업은 당시 본사가 있었던 오사카시와 연구 기반이 잘 갖춰진 과학 도시인 이바라키현 쓰쿠바시, 미국 샌디에이고시에 각각 연구소를 두고 있었다. 그러나 서쪽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오사카와 도쿄에서도 더 동쪽으로 가야 하는 쓰쿠바시의 거리는 제법 멀었다. 2023년 기준으로 두 도시간의 거리는 약 570km로 네비게이션 기준 차량으로 가려면 7시간 30분 이상, 신칸센을 타도 4시간 이상 걸린다.

결국  다케다는  결단을  내렸다. 지난 2005년 폐쇄한 후지사와 공장의 부지를 기반으로 총 1470억엔, 당시 우리 돈으로 1조5000억원 이상의 금액을 들여 2011년 쇼난연구소를 건립했다. 쇼난연구소의 결정적인 터닝포인트는 2018년. 세계적으로 오픈 이노베이션의 바람이 불고 있던 당시 연구시설을 외부 기업과 대학교 등에 개방한 것이다. 일본 제약기업 중 처음으로 시작된 쇼난 아이파크는 불과 1년 만에 42개의 입주 기업 및 대학 유치에 성공했다.

이후  분위기도  호조를  보였다.  2019년에는 가나가와현과 후지사와시, 인근의 가마쿠라시, 지역 내 의료기관인 쇼난 가마쿠라 종합병원 등과 제휴를 시작한 이들은 전용 사무실이 없어도 함께할 수 있는 멤버 제도를 만들었다. 2020년 7월에는 상대적으로 소극적이었던 자국 기업과 투자자의 관심을 환기시키고 투자를 촉진하기 위한 일본 벤처캐피탈(VC) 컨소시엄을 발족하고 현재까지 사무국을 운영하고 있다.

이같은 노력에 힘입어 2022년 9월 입주 기업 및 단체는 150개가 넘고 제약기업 외 차세대 의료, AI, 벤처캐피털 등 기업이나 대학, 행정 기관 등도 모였다.

(위부터) 일본식 방에서 미팅하는 느낌을 줄 수 있도록 만든 고타츠식 회의실과 쇼난이라는 콘셉트를 살린 해변 느낌의 회의실.
(위부터) 일본식 방에서 미팅하는 느낌을 줄 수 있도록 만든 고타츠식 회의실과 쇼난이라는 콘셉트를 살린 해변 느낌의 회의실.

세계적 제약기업인 다케다의 인프라가 있었지만, 신약 개발 과정에서 단일 회사가 아닌 여러 회사의 요구사항을 수용하는 일은 쇼난 아이파크의 과제였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이들이 한 데 어울려 신약 개발에 필요한 토론을 벌이며 연구 인재들의 효율성을 향상시킬 수 있는 방안으로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상호 소통할 수 있는 연결고리를 만들어주겠다는 고민의 결과가 이같은 성과로 이어졌다.

여기에 기업들이 서로의 의견을 더욱 알릴 수 있도록 컨소시엄 등을 개최하며 새로운 기술 발굴의 장을 열기도 했다. 실제 지난 9월 7일에는 메트포폴리탄 학술 컨소시엄(MARC) 등과 함께 학술적 아이디어를 공유하는 심포지엄을 열었다.

아이파크 인스티튜트는 시설뿐만 아니라 각 기업의 연구 인재들이 회사를 떠나 상호 소통할 수 있도록 하기도 했다. 대표적인 것이 동호회 제도. 와인 제조 동호회를 비롯해 기업과 직책을 떠나 아이파크의 구성원 모두가 자신이 좋아하는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한 것도 이들의 단합을 돕는 방법 중 하나다.

 

봄에는 벚꽃, 가을에는 포장마차 보러 오는 주민들 
‘클러스터를 떠나는 것’이 목표인 클러스터, 그 이유는?

실제 쇼난 아이파크의 경우 지역 그리고 일본 사회와 밀접하게 관계를 맺으며 시설 인지도와 의미를 끌어올렸다. 대표적으로 2018년 시작된 이른바 '쇼난 회의'가 그 사례다. 사회적인 의료 관련 문제를 짚어가며 기업 및 지역사회와의 소통을 강화한 것이다. 여기에 크라우드 펀딩(Crowd funding)을 통해 병으로 인해 고통받는 이들에게 음식을 지원하고, 혈액을 통한 바이오마커 발견 캠페인 등을 펼쳐왔다. 코로나19 당시에는 환자를 위한 임시 의료시설 부지를 대여하는 등 지역 밀착 활동에 집중해 왔다.

쇼난 아이파크 단지 앞 미래를 그린 그림. 그림 가운데의 강 우측은 쇼난 아이파크. 좌측은 아이파크를 떠난 이들이 새로이 만들길 기대하는 신약 개발 단지의 예상도다.
쇼난 아이파크 단지 앞 미래를 그린 그림. 그림 가운데의 강 우측은 쇼난 아이파크. 좌측은 아이파크를 떠난 이들이 새로이 만들길 기대하는 신약 개발 단지의 예상도다.

코로나19 이전 주말에는 아이파크 서 쪽의 잔디밭을 개방해 지역주민들이 피크닉 등을 즐기게끔 했다. 지역 내 자율 주행 자동차를 통해 인근 의료기관 내 환자 운송을 돕는 방법을 모색하는 한편, 벚꽃 구경과 포장마차를 즐기는 축제까지 개최했다. 아이파크 1층에는 최근 개방 행사 당시 지역 아이들이 남기고 간 낙서들이 요란하지만 귀엽게 남아있다.

올해는 코로나19 이후 열리지 못했던 지역 축제를 열어 지역 내 아이들이 과학과 의약품에 더욱 호기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하기도 했다. 이밖에도 쇼난 아이파크에서 일하는 연구원들이 자원봉사자로 참여해 인근 지역 초등학교를 대상으로 과학 수업을 진행하는 한편, 중학교의 실무 체험 프로그램 등을 진행하는 등 말 그대로 지역에 스며들 수 있는 다양한 방안을 강구한 것이다.

아이파크  인스티튜트가  꿈꾸는  것은 '기업들이 아이파크를 떠나는 것'이라고 말한다. 다소 이상해보이는 말이지만, 아이파크의 주변을 보면 납득되는 말이기도 하다. 시설은 크지만 아직 시설 주변에는 다른 연구시설 등은 찾아보기 어렵다. 아이파크에서의 연구 결과가 기업으로 돌아오면 기업이 그 이익을 통해 인근에 신약 개발 시설을 지어 네트워킹을 하는 사례를 하나하나씩 만들어 아직은 비어 있는 아이파크의 주변이 모두 헬스케어 연구를 위한 또 하나의 거대한 단지가 되도록 만들겠다는 원대한 목표를 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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