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기술이전 선급금 4년 만에 230% 급증
로슈·J&J 등 한국 생태계로 들어오는 빅파마

@freepik AI
@freepik AI

몇 년 새 중국 바이오 산업은 '저렴한 가격과 풍부한 물량'을 앞세워 글로벌 빅파마의 매력적인 파트너로 떠올랐다. 그러나 최근 기술이전 경쟁이 치열해지고 ADC(항체-약물 접합체)와 이중항체 분야에서 중국 파이프라인 가치가 급상승하며 중국의 '바겐세일' 전략이 주춤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처럼 중국산 후보물질의 몸값이 치솟는 사이, 글로벌 제약사들이 한국 시장에도 눈을 돌리며 새로운 기회의 문이 열리고 있다.

최근 의약품 시장조사기관 이밸류에이트(Evaluate)에 따르면 중국 기업과 서구권 제약사 간 신약 기술이전 선급금(Upfront) 규모가 4년 만에 230% 이상 급증했다. 업계에서는 중국 기업들의 협상력이 높아지면서 기술 도입 비용 부담이 커지자, 글로벌 제약사들이 경쟁력 있는 파이프라인을 갖춘 한국 바이오 기업으로 협력 범위를 확대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중국, 생각보다 싸지 않네...한국은 어때?

중국은 더 이상 저렴한 신약 후보물질 공급처에 머물지 않는다. 이밸류에이트의 데이터에 따르면 서구권 회사와 중국 기업 간 기술이전 계약의 평균 선급금 규모는 2022년 5200만 달러에서 2026년 초 현재 1억7200만달러로 약 230% 증가했다. 딜 건수 역시 2022년 42건에서 2025년 93건으로 120% 늘어났으며, 전체 선급금 규모는 11억 달러에서 56억달러로 약 400% 급증했다. 이는 중국 기업들이 제품 가격을 서구 기업들과 대등한 수준으로 높이고 있음을 나타낸다.

또한 현재 글로벌 임상 파이프라인의 상당 부분은 이미 중국 제품들이 장악하고 있다. 이중항체의 48%, ADC의 51%, CAR-T 치료제의 48% 임상시험에 중국 개발 제품이 포함돼 있다. 이런 가운데 서구 기업들이 특정 신약 후보물질을 찾을 때 중국 기반 기업의 자산을 검토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환경이 조성됐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이러한 중국 딜 가치의 급격한 상승은 한국 바이오텍에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업계 전문가들은 중국이 더 이상 저렴한 공급처가 아니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상대적으로 가격 메리트가 남아 있는 한국의 우수한 파이프라인을 찾는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한국에 점 찍고 7100억 투자한 빅파마

이러한 시장의 흐름을 방증하듯 글로벌 빅파마와 투자사들이 한국 시장에 직접 발을 들이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심수민 파트너스인베스트먼트 상무는 "중국과 대형 딜을 통해 아시아에서도 우수한 신약 후보물질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한 글로벌 투자사와 제약사들이 한국 파이프라인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기 시작했다"며 "실제 글로벌제약사 및 바이오텍, 해외 투자사들에게 한국 파이프라인을 소개하는 미팅이 현장에서 체감될 정도로 늘었다"고 말했다.

최근 로슈 역시 보건복지부와 MOU를 체결하고 향후 5년간 한국 바이오헬스 산업에 총 7100억원을 투자한다고 발표했다. 다빈도·난치성 질환 및 첨단바이오의약품 분야의 글로벌 임상시험을 국내에 유치하고, 오픈이노베이션을 통해 국내 유망 기업의 신속 성장을 지원하겠다는 구상이다.

존슨앤드존슨(J&J)은 2024년부터 보건복지부와 국내 유망 바이오·헬스케어 스타트업을 발굴하기 위해 전문 액셀러레이터 플랫폼인 'JLABS(제이랩스)'를 시작하고, 혁신 신약 및 의료기술 개발을 위한 투자처 발굴과 글로벌 진출 지원을 목적으로 우수 인력 파견 및 해외 인프라 활용 등 실질적인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11일 서울에서 개최되는 '웨스트이스트 바이오파마 서밋(West-East Biopharma Summit)'도 한국 시장에 대한 국제적 관심을 보여주는 또 다른 증거다. 미국 바이오 전문 매체 바이오센추리와 한국바이오협회가 공동 주최하는 이 행사는 아시아 유망 기업과 글로벌 투자자를 연결하는 교두보로, 올해 처음으로 해외 투자자들이 국내 VC를 직접 만나기 위해 대거 한국을 방문한다.

황주리 한국바이오협회의 대외협력본부장은 "다국적 제약사들이 외부 파이프라인을 저렴하게 선점하려 경쟁하면서 중국 파이프라인을 상당 수 들여다봤다. 그러면서 또 다른 라이선싱 대상을 찾던 중 한국 스타트업의 우수한 기술력에 눈을 뜨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JP모건 헬스케어 컨퍼런스 등에서 열리는 '코리안 나잇' 행사의 등록 인원이 과거 300~400명 수준에서 최근 1500명까지 늘어난 점은 한국 파이프라인에 대한 글로벌 노출이 비약적으로 증가했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초기 단계 파이프라인'에게만 있는 전략적 가치는?

다만 한국 바이오 산업이 직면한 과제도 뚜렷하다. 중국은 이미 임상적 유효성(POC)이 입증된 중후반 단계의 파이프라인을 다수 보유한 반면, 한국은 초기 단계(Early Stage) 자산이 주를 이룬다. 일각에서는 임상 결과가 뒷받침되는 중국 제품에 비해 매력이 떨어진다는 시각도 있으나, 업계 전문가들은 이를 오히려 전략적 강점으로 활용할 수 있다고 분석한다.

업계 전문가는 "오히려 글로벌 제약사 입장에서는 초기 단계의 파이프라인을 비교적 낮은 가격에 확보한 뒤 개발을 진행하다가 성과가 없으면 선급금 수준에서 정리하고 빠르게 포트폴리오를 재편하는 전략을 택하기도 한다"며 "경쟁사가 가져가지 못하도록 초기 단계에서 선점하려는 목적으로도 매력적인 자산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파이프라인이 상업화 단계에 가까워질수록 지급해야 할 금액과 기업가치가 급격히 높아지는 만큼, 초기 단계에서 확보할 수 있다는 점 자체가 강점이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정부의 정책적 지원도 예고되어 있다. 허혜민 키움증권 연구원은 "정부 역시 바이오를 국가전략산업으로 지목하며 관련 정책 발표가 이어질 것으로 기대된다"며 "신약 등 허가 심사 기간 단축과 함께 1분기 중 바이오 산업 육성 로드맵이 발표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어 "총리실 직속 ‘국가바이오혁신위원회’ 신설도 추진되고 있는데, 이는 기존 국가바이오위원회와 바이오헬스혁신위원회를 통합해 범정부 차원의 정책 조정 기능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허 연구원은 "중국 바이오텍의 기술이전 밸류에이션이 글로벌 시장에서 새로운 기준점(benchmark)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며 "중국 바이오텍의 부상은 K-바이오 입장에서는 기술이전 경쟁 심화 요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밸류에이션 상승 측면에서는 수혜와 기회 요인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저작권자 © 히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