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R&D DAY 리뷰
TPD 중심 'New Modality 부문' 신설…키메라 출신 조학렬 전무 영입
인프라 가꾸는 이유? "렉라자 성공 안주 지적, 가슴아프게 받아들여"
창립 100주년을 맞는 유한양행이 렉라자로 대표되는 '물질 도입-임상-기술수출' 모델을 넘어 자체 플랫폼 기술 확보라는 새 R&D 전략을 세웠다. '렉라자 다음은 뭐냐' 는 압박에서 벗어나 표적단백질분해(TPD) 기술을 비롯해 다양한 질환에 적용가능한 '신약을 가꾸는 농부'로 전환을 서두른다. 21일 R&D DAY에 나타난 유한양행의 성공과 반성을 담았다.
유한양행은 21일 서울 본사에서 R&D Day를 열고 파이프라인 현황과 중장기 연구개발 전략을 발표했다. 조욱제 대표이사, 김열홍 R&D총괄 사장, 최영기 중앙연구소장, 조학렬 뉴 모달리티 부문장이 참석해 질의응답까지 약 90분 간 논의가 이어졌다.

29개 파이프라인
항암 등 4개 분류로 한걸음씩 차곡차곡
유한양행은 현재 29개 파이프라인 보유하고 있다. 항암제(표적치료제 중심), 대사질환(비만·MASH), 면역질환, New Modality 등 4대 축으로 파이프라인을 구성했으며 비항암 영역을 지속 확대하고 있다.
김열홍 사장은 렉라자의 향후 전망을 두고 "2031년 EGFR 변이 비소세포폐암 시장은 16조원 규모"라며 "J&J에서 최소 7조원 이상 점유를 예상하지만 현재 나오는 데이터로 봤을 때 적어도 절반 이상을 리브리반트와 렉라자 병용요법이 가져갈 것"이라고 봤다.
그는 "마리포사 OS 데이터에서 생존 커브의 차이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벌어지고 있다"며 "특히 아시아 서브그룹에서 이 차이가 더 확연하다"고 강조했다. 현재 개발중인 파이프라인 중 주요 약물을 하나씩 설명하며 앞으로도 충분히 기술수출을 비롯 세계 시장에 도전할 만한 물질이라고 밝혔다.
유한양행 주요 파이프라인 현황
2026년 1월 R&D Day 발표 기준
카드를 클릭하면 상세 정보를 볼 수 있습니다. 인포그래픽=이우진 기자

파이프라인만? 플랫폼으로 간다
ADC가 아닌 TPD를 선택한 이유
이날 발표에서 눈여겨봐야 할 지점은 각 파이프라인의 진행상황 뿐만은 아니었다. 회사가 강조한 것은 차세대 모달리티 플랫폼, 그 중에서도 ADC가 아닌 TPD였다.
김열홍 사장은 ADC의 가능성에도 실제 성공 가능성과 다질환 적용 가능성에서 TPD를 낙점한 이유를 전했다.
ADC는 결국 항암제 분야에 국한될 수밖에 없습니다. 현재 100여개 ADC 중 약이 되어서 시장에 살아남은 것은 약 2%에 불과합니다.
TPD는 항암 분야만이 아니라 면역, 다른 질환에도 훨씬 확장성이 넓고 약으로 개발이 어려운 타깃을 극복할 수 있는 장점이 있어 이쪽에 집중하기로 결론내렸습니다.
회사는 이를 위해 1월 TPD를 전담하는 '뉴 모달리티 부문'을 신설했다. 부문장으로는 글로벌 TPD에서 선도적인 기업인 키메라 테라퓨틱스에서 플랫폼생물학 이사를 역임한 조학렬 전무를 영입했다.
조 전무는 경북대 유전공학 석사, 밴더빌트대 의과대 박사 출신으로 하버드·MIT·예일대 연구원과 교수를 거친 TPD 분야 전문가다.
조학렬 전무는 "올해가 유한의 첫 번째 100년을 마무리하면서 두 번째 100년을 시작하는 첫 해"라며 뉴 모달리티 부문의 목표를 "쉽게 말하면 넥스트 렉라자를 만들겠다는 얘기"라고 요약했다.
뉴 모달리티 부문은 합성 TPD, mRNA TPD, eTPD(세포외 단백질 분해), TPC(Targeted Protein Capture) 등이다. 조 전무는 "TPD로 분해할 수 없는 단백질이 많다. 유비퀴틴화 사이트가 없는 단백질은 TPD 기술로 분해할 수 없는데, TPC라는 새로운 개념의 차세대 근접유도체 플랫폼 기술로 이 한계를 극복하려 한다"고 설명했다.
조 전무는 "어차피 어려운 일을 할 거면 성공했을 때 굉장히 큰 가치를 창조하는 일을 하자, 그게 유한의 정신"이라고 강조했다.
최영기 중앙연구소장은 "많은 협력사를 통해 이제는 국내에서 TPD 기술이 어느 정도 내재화됐다"며 "최근 3년간 연평균 13명, 한 달에 1명 이상 신규 인력을 확보해 특히 TPD와 AI 분야 역량 강화에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숨겨진 슬라이드 한 장
"렉라자 성공 안주 지적, 아프게 받아들여"
김열홍 사장은 이날 발표자료에 포함되지 않은 슬라이드를 현장에서 한 장 공개했다. 외부에서 유한양행 R&D를 어떻게 평가하는지 스스로 정리한 내용이었다.
실제 슬라이드 내용을 공개할 수는 없지만 내용만큼은 업계에서 지적하는 부분이 일목요연하게 담겨있었다. 마지막 줄에는 '렉라자 성공에 만족하고 안주한다'는 반성도 있었다.
김열홍 사장은 "무엇이 우리의 약점으로 외부에서 평가받고 있는지 우리 스스로 열거했다"며 "아프게 지적받는 것은 렉라자의 성공에 만족하고 안주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우리 R&D는 이를 개선하기 위해 많이 변화해왔다. 최근 1~2년 동안 전략을 재구성하는 과정을 거쳤다"고 말했다. 숨겨진 슬라이드 한장은 플랫폼 전략 전환의 출발점인 셈이다.
실제 렉라자 성공 모델의 경우 물질은 제노스코에서 도입했고, 글로벌 개발은 J&J가 담당했다. 유한양행의 역할은 임상 1상과 기술수출 협상이었다. 오픈 이노베이션이라는 과제의 정석처럼 여겨지지만 제2의 렉라자를 만들려면 또다시 좋은 물질을 찾아야 하는 구조라는 뜻이기도 하다.
반면 플랫폼은 1개 기술에 투자하면 표적만 바꿔 여러 파이프라인을 파생시킬 수 있다. 개발에 실패해도 기술은 남고 표적만 바꿔 재시도할 수 있다. 실제 세계적인 제약사들도 개별 물질보다 플랫폼 기술 단위의 제휴를 선호하는 추세라는 점에서 유한양행의 전략 역시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 김 사장의 지적이다.

통렬한 반성과 커다란 로드맵
유한은 새 100년 위해 밭을 일군다
발표 전 자료를 보다가 한 쉐프의 이야기가 문득 생각났다. 뛰어난 요리사가 되면 처음에는 동료 쉐프와 친해지지만 나중에는 농부, 어부 등 생산자와 친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타고난 바탕이 좋지 않으면 좋은 음식이 나올 수 없기에 음식은 재료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유한양행의 R&D 데이도 자랑이 아니라 반성으로 시작했다. 조욱제 사장은 행사를 여는 자리에서 "그동안 우리 파이프라인과 기술을 이렇게 직접적으로 소개할 만한 자리가 없었다"는 말로 운을 뗐다. 이어진 김열홍 사장의 반성, 최영기 중앙연구소장과 조학렬 전무의 말은 새로운 판을 깔기 위한 로드맵을 소개하는데 집중했다.
비유하자면 '쉐프에서 농부로'의 전환이다. 과거 렉라자 모델은 외부에서 좋은 재료를 사서 요리하는 쉐프였다면 앞으로는 재료를 직접 재배할 수 있는 밭과 레시피를 보유한 농부가 돼 '맨땅에서 환자에게까지'를 구축하는 회사가 되겠다는 계획이다.
유한양행은 100주년을 맞는 올해 '개별 신약'이 아닌 '플랫폼'에서 답을 구했다. 종종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회사가 아니라 어떤 재료든 맛있게 만들 수 있는 레시피와 밭을 가진 회사로 거듭나겠다고 선언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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