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체×AI×CDMO 삼각축으로 전주기 혁신 추진

히트뉴스 연재 K제약바이오 미래 성지 순례
① 서울 문정바이오클러스터에 맺힌 '혁신신약 봉오리 40송이'
② 마곡 바이오 클러스터, 바이오텍과 제약사의 'R&D 콜라보'
③ 송도 바이오 클러스터, 밸류체인 갖춘 '글로벌 바이오 시티' 꿈꿔
④ 광교 클러스터, 바이오기업 200곳 모여 '신약 R&D 허브'로 도약
⑤ 'R&D 전진기지' 포항 클러스터, 구조 기반 신약 개발 꽃 피운다
⑥ 혁신 R&D 성과내는 대전 바이오 클러스터… 스타 바이오텍 한가득
⑦ 병원서 꽃핀 화순 클러스터… '백신+면역치료제' 투트랙 전략 승부
⑧ 안동·포항 클러스터 "백신 제조 경쟁력·그린백신 R&D로 승부수"
⑨ 대전 클러스터를 만든 삼각편대
⑩ 바이오의 도읍지로 나아가는 인천-시흥
⑪ 춘천·홍천 클러스터, '최초 도시'에서 '항체 수도'로
강원도 춘천은 바이오 분야에서 최초라는 이름이 많다. 국내 처음으로 생물벤처사업육성연구회가 조직됐고, 생물산업육성을 위한 시범도시로 선정됐다. 지역 특화센터 중에서 가장 먼저 아파트형 공장을 열어 벤처들을 맞았고, 전국 최초로 지역 바이오기업 매출 1조원을 달성한 역사도 있다. 개척과 리빌딩이라는 역사를 지닌 춘천과 항체클러스터로 함께 뛰어든 홍천은 우리나라 바이오사(史)에서 눈을 크게 뜨고 지켜봐야 하는 곳이다.
산속 곳곳에 숨어있는 산업단지,
강원바이오 꿈 여기서 자랐다
서울양양고속도로로 1시간 반 달려 도착한 곳은 2만5660㎡에 달하는 춘천 거두농공단지다. 농공단지라지만 안에는 제약바이오기업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단지에 들어서면 7시 방향 한국코러스를 시작으로 8시 방향 휴젤, 맞은편 하울바이오, 위로 올라가면서 애드바이오텍, 여러 건물에 자리잡은 바디텍메드와 일화, HLB제약 등이 눈에 들어온다.
제약 생산시설은 아니지만 일동후디스와 휴온스푸디언스도 있다. 중앙 목 좋은자리에 필러를 만드는 휴젤 계열의 아크로스도 있다. 단지에 소개되지 않았지만 인근에도 여러 기업이 있고, 조금 벗어나면 기업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기숙사도 자리잡고 있다.

거두농공단지에서 홍천 쪽으로 차로 이동하면 30분 가량 거리에 동춘천산업단지도 있다. 여기에 입주한 제약바이오기업숫자는 적지만 이름만 들으면 알만한 기업들이다. 단지 팻말 앞에 거대한 규모의 유바이오로직스 공장이 있다. 맞은편에는 외국인 로만 베르니두브 대표가 창업한 에스테틱 기업 코루파마의 제조소 등도 위치해 있다.
외곽 시설을 돌았으니 시내를 볼 필요가 있다. 구불구불 길을 돌아나와 시내가 위치한 석사명동 쪽으로 이동하면 춘천바이오 태동에 큰 역할을 담당했던 강원대 춘천 캠퍼스가 보인다.
커다란 대학 부지 사이 건물을 요리조리 빠져나와 동문으로 이동하면 옛 농업생명과학대부지 중 연면적 2만1300㎡(옛 6400평)에 달하는 '캠퍼스혁신파크' 건설이 한창이다. 골조가 완성된 상태에서 세부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 바이오 국가첨단전략산업 특화단지의 핵심 거점 중 하나다.
바이오특화단지 안에는 남춘천산업단지 및 홍천북방농공단지도 자리잡고 있다. 단지에서 가장 유명한 기업은 각각 씨티씨바이오와 애드바이오텍으로 제조소가 세워져 있다. 그럼에도 캠퍼스혁신파크가 특별히 중요한 이유는 AI 신약개발 및 디지털 헬스 분야를 중심으로 기업을 유치하고 연구를 지원하겠다는 계획 때문이다. 80개 기업을 유치하겠다는 것이 강원도와 강원대의 목표인데 이 계획이 완성되면 현재 원주시의 자랑인 의료기기 등과도 협업이 가능한 기틀이 만들어진다.
다음은 춘천바이오산업진흥원. 바이오산업 분야에서 아파트형 공장의 효시인 이 곳에서 바디텍메드와 유바이오로직스가 탄생해 다른 단지로 뻗어 나가게 만든 춘천 바이오의 상징과도 같은 곳이다. 진흥원 안으로 들어서니 반짝이는 전시관이 보인다. 규모는 작지만 관리가 잘돼 있는 ‘배계섭관’이다. 지역 바이오의 산파 역할을 한 故 배계섭 춘천시장과 바이오산업을 기리는 곳이다.

벽을 둘러싸고 휴젤, 바디텍메드, 유바이오로직스, 애드바이오텍, 에이프릴바이오, 메디안디노스틱, 바이오메트릭스테크놀로지, 청도제약, 이노백, 하울바이오, 한국코러스 등 앞서 나온 각 기업들의 면면이 표 하나에 모두 정리돼 있다. 이곳엔 배 전 시장의 흉상이 아닌, '춘천바이오의 역사'가 담겨있다.
마지막으로 이동한 곳은 홍천에 위치한 국가항체클러스터 부지다. 7월 준공된 건물 세 곳에는 강원테크노파크 사무실과 중화항체 치료제 개발 지원센터, 면역항체 치료소재 개발지원센터, 미래감염병 신속 대응 연구센터와 한국스크립스연구원이 현판을 걸었다. 앞으로 공원, 항체산업비즈니스센터, 지원센터를 비롯해 근무자를 위한 행복주택까지 마련된다.

현재 춘천과 홍천 바이오특화단지에 선정된 곳은 기 조성 단지 5곳, 조성중인 2곳, 향후 지어질 3곳이다. 현재 조성된 곳이 강원도 최고(最古)의 산업단지인 후평일반산업단지와 거두농공단지, 동춘천산단, 남춘천산단, 홍천북방농공단지 등이다. 여기에 앞서 방문한 캠퍼스 혁신파크와 홍천국가항체클러스터이고 기업혁신파크, 거두농공단지 옆 일반산단과 캠프페이지 내 도시재생혁신지구를 포함하면 총 10곳의 단지가 춘천 및 홍천의 바이오산업을 떠받친다.
간절함이 만든 30년 바이오의 시작
포기하지 않았기에 얻은 귀한 성과
춘천의 바이오는 개척의 역사다. 1995년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발족한 생물벤처사업육성연구회는 춘천이 나아가야할 길을 제언하며 바이오산업의 토대가 됐다.
故 조규헌 강원대학교 화학공학과 교수를 주축으로 정연호 현 스크립스코리아항체연구원장, 전계택 강원대 분자생명과학과 명예교수, 홍억기 강원대 화공생물공학부 명예교수, 허원 강원대 생물공학과 교수, 전계택 강원대 분자생명과학과명예 교수, 김동진 한림대 환경생물공학과 교수 등이 의기투합해 만든 연구회는 강원도에 생물산업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춘천시와 협력하며 육성계획을 수립했다. 이들은 산학연병 체계 등 거버넌스를 구축하는 데 핵심 역할을 수행했다. 정책 방향을 잡는 한편 산업단지 조성도 함께 만들어냈다.
춘천이 연구회에 관심을 기울일 수 있었던 데는 故 배계섭 춘천시장의 역할이 컸다. 민선 1기 춘천시장이었던 배 전 시장은 당시 춘천시에 새로운 산업기반이 필요함을 역설했다. 그러나 춘천은 상수도보호지역이자 군사시설보호구역이 끼어있어 규제가 많았다. 후평산단의 선전에도 소비도시라는 이미지를 벗어날 필요가 있었다. 배 시장은 '굴뚝 없는 산업' 중 바이오와 멀티미디어를 새 먹거리로 점 찍었고,생물벤처육성연구회 결성 과정에서도 역할을 다했다.
1998년 산업통상자원부가 이 계획을 공식 채택하면서 이들의 노력은 3년만에 지자체 최초 생물산업 육성 시범도시로 선정되는 쾌거로 이어졌다. 그리고 5년 뒤 춘천바이오산업진흥원이 설립됐다.
그러나 바이오의 미래를 본 곳은 춘천만은 아니었다. 셀트리온을 비롯해 대기업의 인프라를 바탕으로 성장을 거듭해온 인천, 바이오벤처 붐을 일으키며 커오른 대전, 이후 청주 오송과 대구에 이르기까지 바이오의 파이는 잘게 갈라졌다.
춘천의 바이오는 개척의 역사이다.
30년전 시작된 바이오의 꿈이
천천히 영글고 있다.
그럼에도 춘천은 포기하지 않았다. 실제 2023년 기준 오송에 투자된 8조원에 비하면 춘천의 1500억원 투자는 미미했지만 춘천시와 춘천바이오진흥원은 국내 특화센터 중 최초로 GMP 인증을 획득한 이후 체외진단 산업화 플랫폼 구축사업, 한국형 헴프 산업화 연구개발 사업 선정, 강원바이오통합솔루션센터를 개소하는 등 인프라를 '리빌딩' 하면서 기업을 도왔다.
바이오 불모지 춘천은 2014년 바이오기업 육성 100개를 돌파한 뒤 2015년 바디텍메드와 휴젤의 코스닥 상장, 전국 최초 지역바이오산업 매출 1조원 달성이라는 쾌거를 이뤘다. 30년전 시와 교수들이 꾸었던 '바이오의 꿈'은 천천히, 꾸준히 이뤄지고 있었다.
바이오특화단지에는 춘천과 협력하던 홍천이 함께 붙었다. 2007년부터다. 당시 홍천군은 산양산삼 등 지역 특산 약용작물을 고부가가치 제품으로 육성하기 위해 연구개발(R&D)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하지만 지역 내 대학이 없어 지자체 차원의 홍천메디칼허브연구소를 2008년 설립했다. 연구소가 지역기업 하나 하나 찾아다니며 연구개발을 돕기까지 했다.
그린바이오로 출발한 홍천은 2009년 강원도와 춘천, 강원대가 유치한 스크립스코리아항체연구원을 홍천으로 이전하는 데 성공하며 레드바이오 분야에 진입한다. 감염병 연구로 유명한 연구소가 해외 분원을 낸 것도, 이전 지역이 홍천이라는 사실도 큰 뉴스였다. 홍천군이 추진하는 국가항체클러스터 조성사업을 통해 이전 유치에 성공했던 것이다.
아직 터줏대감 격인 씨티씨바이오의 제조소를 비롯해 최근 기술이전에 성공한 크로스테라퓨틱스, 펩토이드, 하울바이오 등 제약바이오 기업이 아주 많다고 할 수 없지만 이번 바이오특화단지 지정을 시작으로 더 적극적으로 제약바이오 기업을 유치하겠다는 것이 홍천군의 계획이다.
특히 지난해 특화단지 지정 이후 23개 기업이 새롭게 입주했으며 내년 입주기업까지 포함하면 120여개 기업이 단지에 자리잡을 예정이다.
특화단지로 구축한 발판
K바이오 성공모델 시작점
바이오특화단지 선정은 강원특별자치도 입장에서 발전의 발판을 만들어준 것이나 다름없다. 강원도 역시 이번 선정을 지역의 성장 동력을 넘어 대한민국 바이오산업의 새로운 성공 모델을 만들어갈 중요한 시작점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기존 바이오 기업 집적지를 중심으로 춘천 8개, 홍천 2개 단지내 AI 신약개발과 중소형 CDMO(위탁개발생산) 육성 거점으로 조성한다는 계획이다. 춘천에서 창업해 코스닥에 상장한 기업은 6개로 비수도권 중 가장 많은 수치를 기록했다는 사실이 이를 말해준다.
도는 이와 함께 올해 1월 경제부지사를 단장으로 하는 '강원 바이오 특화단지 추진단'을 출범해 관련 정책을 심의하고 총괄 기반 조성, 연구개발, 기업 혁신 및 인력 양성 등 각 분야의 구체적인 계획을 수립, 추진하는 별도의 기구를 운영한다는 계획이다. 중앙정부 지원과 더불어 기존 지역이 쌓아온 생태계를 더욱 단단하게 꾸리겠다는 것이다.
강원도는 '3+3 전략'으로 道 전역을 첨단 바이오 클러스터로 구축하겠다는 계획도 세우고 있다. 특화단지를 비롯해 글로벌혁신특구, 기업혁신파크를 기반으로 원주는 디지털 헬스·의료기기, 강릉은 천연물 바이오, 남부내륙권은 그린 바이오로 특화해 연계성을 강화하는 전략이다.
현재 위탁생산 분야가 강한 국내 바이오산업에서 초기 연구개발 및 기업 지원에 집중하고 신약 후보물질 공급기지 역할을 맡겠다는, 지역 특징을 살린 방안이다.
도는 여기에 하나하나 벨트를 얹었다. '강원-인천-대전' 초광역 삼각벨트 협력사업을 통해 셀트리온과 협약을 체결하고 항암 분야 기업 발굴을 위한 협업을 시작했으며 기술력 있는 기업의 해외 시장 진출을 촉진하고 글로벌 네트워킹을 확대해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시키는 성장 단계별 맞춤형 지원을 이어가겠다는 계획이다
강원도는 바이오산업의 지속 성장을 위해서 민간 투자라는 거대한 자본의 흐름이 필수적이라는 점에 공감해 현재 1500억원 규모의 전용 펀드를 추진할 계획이다. 큰 돈이 가는 곳에 벤처캐피탈 등 여러 투자자가 따라붙을 수 있는 만큼 이번 펀드가 기업 성장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쌓아온 경력만큼, 해결할 문제도 쌓였다
교통과 인재, 정주여건 개선은 현재 진행중
그럼에도 춘천과 홍천 바이오특화단지는 해결해야 할 과제가 적잖다. 많은 지방권 클러스터가 가지고 있는 교통과 인재유치, 정주여건 개선이다.
춘천-홍천 바이오특화단지는 콘셉트상 전력이나 수도 등 생산에 필요한 인프라의 영향을 덜 받는다는 장점이 있다. 다만 바이오산업의 '연구 능력'을 확장하기 위해서 우수한 연구인재를 얼마나 유치하느냐는 과제다. 지역내 강원대학교와 한림대학교, 한국폴리텍대학 등의 인프라는 갖춰져 있지만 실제 지역에서도 문제를 삼고 있는 부분이 '서울 혹은 수도권으로 인재유출’'문제다.
현재의 지역 대학과 연계하는 시스템과, 지역 기업의 정확한 수요를 받쳐줄 수 있는 고등교육기관이 많지 않다는 점은 강원도 바이오산업에서 크게 대두되는 문제다. 특히 소규모 CDMO 등의 경우 석·박사급 전문 인재가 필요한 경우가 많다.
정주여건 문제도 있다. 강원도 내 유수도시라는 점은 있지만 교육 문제의 개선은 반드시 필요한 과제로 꼽힌다. 실제 오송에 출퇴근만 하던 이들이 국제고등학교 유치와 지역 정원제 운영을 밝히자 이주율이 높아지고 있다는 이야기는 연구인재 뿐만 아니라 그 가족 구성원 전체를 옮겨올 수 있는 인프라의 필요성을 보여주는 사례다.
클러스터의 교통 문제도 빼놓을 수 없다. 서울양양 고속도로 덕분에 과거에 비해 접근성이 좋아졌지만 실제 탐방을 해보니 춘천 시내에서 홍천 시내를 가기 위해 구불거리는 국도를 돌고 돌아야 하는 상황이 빈번했다. 홍천군에서 근무하면서 실제 정주환경을 춘천으로 삼는 이들이 많다는 점을 감안하면 고려해야 할 사항이다.

강원도 및 춘천시, 홍천군 등 지자체 역시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용문-홍천 광역철도와 국도 5호선 확장과 포장 등을 정책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교통망의 확충은 단순히 물리적 이동 시간 뿐만이 아니라 바이오 인재들의 심리적 거리에도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탐방과 관계자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오면서 여러 클러스터 사이에서 춘천이 살아남기 위해 모양을 바꾸며 어떻게 '리빌딩' 했는지 되새겨 보았다. 대규모 생산시설과 집적의 힘, 정부지원 사이에서 강원도가 추구하는 바이오산업은 작지만 단단했다. 윤기 없는 흙속에서도, 땅이 바싹 마르는 가뭄에도 천천히, 꾸준히 바이오를 키워온 의지가 특화단지 지정으로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기를 기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