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NK | 신약 허가 수수료 인상 9개월의 변화
허가 1호는 세노바메이트 전망… '심사인력' 확충은 여전히 과제

THINK 신약허가 수수료 인상 9개월의 변화
[끝까지히트 15호]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올해부터 신약 허가 수수료를 기존 800만원에서 4억원으로 약 50배 인상했다. '신약 허가 수수료'에 수익자 부담 원칙을 전면 적용해 확보된 수수료를 바탕으로 양질의 심사를 제공하겠다는 취지다.
약 9개월이 흐른 지금, 허가 수수료 인상을 통해 제약·바이오 업계가 가장 크게 변화를 느끼는 대목은 무엇인지, 어떤 효능감을 느끼고 있는지, 1호 품목은 무엇인지를 두고 이목이 쏠리고 있다.
<끝까지 HIT>는 다수의 제약사 RA 전문가, 인허가 담당 임원을 만나 답을 찾았다. 이들의 목소리를 통해 '신약 혁신 방안' 시행 9개월의 시간을 평가하고 향후 과제를 짚어봤다.
수수료 올리고 전담팀 신설, 신약허가 혁신 스타트
식약처는 2024년 9월 '신약 허가 혁신 방안'을 발표했다. 신약 허가 수수료를 4억 1000만원으로 재산정해 전문심사 역량을 강화하겠다는 것이 골자다. 식약처는 "인상된 허가수수료를 기반으로 세계 최고 수준의 신속한 허가로 환자의 치료기회를 앞당기겠다"고 밝혔다.
이어 "신약 허가 신청시 제품별 전담팀을 신설하고 임상시험과 제조품질 관리를 우선적으로 심사해 신약허가 심사기간을 295일로 단축할 것"이라고도 했다.
올해 1월 1일부터 '신약 허가 혁신 방안'이 시행됐다. 식약처 허가총괄담당과에 따르면 허가수수료를 인상한 이후 8월까지 10개 성분(케미칼 의약품 6개, 바이오 의약품 4개), 14개 품목이 신약 허가를 신청한 것으로 나타났다.
작년 19개 성분의 신약 허가 신청이 들어온 점을 고려하면, 올해에도 비슷한 수준을 유지했기 때문에 식약처는 제도가 연착륙했다고 평가했다.

신약 허가 수수료 인상, 핵심 변화는 '대면회의 10회'
그렇다면 업계가 체감하는 가장 큰 변화는 뭘까. RA부서 관계자들은 '대면회의 횟수 증가'가 이전과 크게 달라진 점이라고 입을 모았다.
대형 제약사 개발 본부장은 "이전에는 신약 허가 신청 이후 식약처 심사관과 제약사 허가 담당 직원이 '대면'하는 횟수가 한 두 번 수준이었다"며 "신약 허가 신청을 하면 대부분의 절차가 공문 형식으로 진행됐고 심사관을 만나는 일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고 말했다.
그는 "허가 신청 절차에서 궁금한 점이 있어 이메일과 전화를 해도 식약처 담당자와 연락이 닿기가 쉽지 않았다"며 "그러나 이제는 신약 허가 신청 이후 식약처 심사관들을 직접 만날 수 있다. 이점이 제도 시행 이후 가장 큰 변화"라고 설명했다.
제약사들이 약 4억원의 수수료를 지불하고 식약처에 신약 허가를 신청하면, 임상·제조·품질 등 분야별 심사자로 구성된 식약처 전담 심사팀(10~15명)과 최대 12회까지 대면회의를 할 수 있다.
먼저, 허가 신청 접수 이후 사전 상담을 위한 '개시회의'가 시작된다. 이후 신약 허가 심사 방향과 보완 사항 설명을 위해 최대 10회까지 '대면회의'가 가능하다는 것이 핵심이다.
식약처 관계자는 "과장급이 포함된 식약처 내부 전담 심사팀이 업체와 대면회의를 진행한다. 개시 회의를 포함해 품질, GMP, 안전성·유효성 심사 등 기능별로 두 번씩 대면 회의가 가능하다. 신약 혁신 방안 시행 이후 대면회의가 수차례 열리고 있고 최대 10회까지 가능하다"고 밝혔다.
최근 대면회의에 참여한 제약사 인허가 담당자는 "실제로 회의 현장에 참석한 식약처 전담팀 인원만 10명이 넘었다"며 "많은 관계자가 참석해 소통하는 만큼 식약처가 허가 속도를 높이기 위해 의욕적으로 나선다는 느낌을 받았다. 서로 마주 앉아 같은 문서를 보면서 의견을 나눴기 때문에 소통이 원활해졌다"고 전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도 "과거에는 소수의 식약처 심사자와 회사의 RA 담당자 간 전화통화가 신약 허가 민원의 주된 커뮤니케이션 창구였다"며 "소통 상 오류가 발생할 가능성도 높았고 이것이 민원에 영향을 주는 일도 있었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하지만 신약 혁신 방안 시행 이후 대면회의에서는 식약처 모든 심사자들이 참석한 모습이 인상적이었다"며 "여기에 각자의 전문성을 가진 회사의 많은 담당자들도 참석할 수 있었다. 활발히 의견을 공유하기 때문에 소통 부재로 초래될 수 있는 위험이 크게 줄어들었다"고 덧붙였다.

보완 사항 적극 가이드, 업계 만족감 높다
특히 식약처가 '대면회의'를 통해 보완 사항을 설명했을 당시 제약사 인허가 담당자들이 만족감을 느꼈다는 후문도 들린다.
또 다른 제약사 RA 담당자는 "과거에는 식약처에 임상 3상 자료를 내면 식약처는 약사법 규정 한 줄만 넣어 '자료가 부족하다'는 공문을 보냈다"며 "분명 임상 3상의 모든 자료를 빠짐없이 제출했는데 부족하다는 보완이 전달돼 이를 구체적으로 파악하기 위해 식약처 담당자에 연락을 해도 전화 연결이 안 될 때가 많았다"고 밝혔다.
이어 "그러나 신약 혁신 방안 시행 이후 식약처는 대면 회의를 통해 주도적으로 보완 사항의 취지를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며 "1시간 이상의 회의를 통해 보완 자료 작성 방향 관련 질문에도 적극적으로 대답하면서 보완 사항의 예측 가능성이 담보됐다"고 설명했다.
대면 회의를 마치는 즉시 허가총괄과 전담팀과 제약사가 회의록을 검토한다는 점도 특징이다. 회의록 작성으로 보완 사항과 관련해 투명성이 높아졌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최근 대면회의에 참여한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회의가 끝나면 문서를 프롬프터에 띄워 서로의 입장을 정리하고 확인한다"며 "결정 사항을 그 자리에서 확인하기 때문에 회의 이후 보완자료를 준비함에 있어 방향이 잘못되지는 않았을지에 대한 불안감이 크게 줄었다. 식약처 보완 취지를 회의록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는 장치가 있는 점에서 상당한 효과를 체감하고 있다. 예측 가능성과 투명성이 높아진 것"이라고 밝혔다.
'캘린더 데이' 패러다임 변화에 업계 기대감 상승
RA 전문가들은 식약처가 허가 수수료를 인상하면서 신약허가 심사기간을 '295일'로 단축하겠다고 밝힌 대목도 중요한 변화 중 하나라고 전했다. 특히 이들은 신약 심사 기간 295일이 '워킹데이(근무일)' 기준이 아니라 '캘린더(달력, 주말 포함)'로 바뀐 점을 주목했다.
중소 제약사 개발본부 임원은 "합성의약품의 일반 허가 심사의 법정 기간은 120일로 지금도 워킹데이 기준"이라며 "여기에 보완 사항으로 인한 기간도 포함되지 않는다. 주말도 제외됐기 때문에 패스트트랙을 밟지 않는 이상, 보완이 한 번이라도 나오면 신약 허가 심사 기간이 1년 이상을 넘기는 일이 비일비재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러나 식약처는 이번에 달력 날짜를 기준으로 295일, 즉 약 10개월 안에 신약을 허가하겠다고 선언했다"며 "캘린더 데이 기준은 미국식품의약국(FDA)의 신약 허가 기간 기준이자 기업들의 회계연도 기준과도 일치한다. 295일이란 약속만 지켜진다면 4억이라는 금액은 전혀 아까운 돈이 아니다. 특허 존속기간 감소 등 허가 심사 지연으로 인한 매출 손실이 더욱 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특히 식약처는 이번 신약 허가 혁신 방안의 일환으로 허가 접수일부터 90일 이내 GMP 실태조사를 우선적으로 실시하고 있다.
최근 신약 허가 신청 절차를 진행한 업계 관계자는 "GMP 실사는 확실히 빨라졌다. 허가를 신청한 시점부터 GMP 실사 일정이 논의되고 날짜가 확정된 점이 인상 깊었다"면서 "과거 GMP 실태조사 일정조차 잡지 못해 짧게는 수개월에서 1년 이상 기다린 점을 고려하면 비약적 속도"라고 설명했다.
이어 "특히 실사 장소가 해외에 있을 때 실사 일정이 빨리 잡히지 않아 신약허가 기간이 차일피일 미뤄졌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며 "295일 안에 허가를 하기 위해서는 GMP 절차를 빠른 속도로 끝내는 것이 가장 중요한데, 실사 일정 확정과 그 이후 GMP 보완 관련된 논의도 부드럽게 진행되고 있다"고 부연했다.

다국적제약사에 유리할까, 업계 의견 엇갈려
업계에서는 '신약 허가 혁신 방안'이 다국적 제약사의 혁신신약 품목의 허가 속도를 더욱 높일 것이라는 전망도 들린다.
제약사 인허가팀 RA 담당자는 "신청 품목이 희귀질환 전용 GIFT 대상이 아닌 수입의약품 신약이라면 민원기간이 절반 이하로 줄어들 만큼 가장 극적인 일정 단축이 될 것"이라며 "이미 FDA 등에서 허가를 받아 특별한 보완사항이 없는데다 GMP 실사 시점이 앞당겨질 수 있기 때문이다. 다국적 제약사의 국내 도입 신약이 이번 허가 수수료 인상의 수혜를 입을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한국글로벌의약산업협회(KRPIA)는 이번 제도에 관련해 조심스러운 입장을 전했다. KRPIA 측은 "제도가 올해 1월 시행된 이후 8개월이 지났으나, 실제 신청된 품목들은 여전히 검토가 진행 중이다. 아직 검토 초기 단계에 있는 품목들도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고 밝혔다.
이어 "따라서 현 시점에서는 회사들이 진행 상황을 협회에 공유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일정 수준 검토가 마무리되고 품목 허가가 진행된 이후에야 회사 측에서도 보다 구체적인 의견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물론, 국내 신약 개발사들이 개발한 신약 개발 속도도 한층 더 단축될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예측 가능하고 높은 수준의 품질 심사를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효능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1호 타이틀은 뇌전증 신약 '세노바메이트' 유력
업계의 시선은 자연스레 허가 수수료 인상 이후 '1호 타이틀'의 주인공에 쏠리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일라이릴리는 지난 2월 초 식약처에 유방암 치료 신약 '인루리오정'에 대한 품목허가를 신청했다. 수수료 인상 이후 처음으로 신약 허가를 신청한 것이다.
일라이릴리의 허가 신청이 가장 빨랐기 때문에 '1호 신약' 타이틀을 가져갈 수 있다는 전망이 들리지만 업계 일각에서는 인루리오정에 이어 뇌전증 신약 '세노바메이트'도 후보군으로 거론하고 있다. 동아ST는 지난 2월 일라이릴리에 이어 두 번째로 세노바메이트 허가 신청서를 접수했다.
상위 제약사 출신 RA 전문가는 "두 제품이 거의 동시에 허가 신청에 들어간 것으로 알고 있다"며 "식약처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해외 도입 신약보다는 토종 신약에 1호 타이틀을 부여하고 싶을 것이다. 신약 허가 수수료 인상의 효능감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다국적사보다는 국내 제약사가 상징성이 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이어 "더구나 세노바메이트는 일반 신약이 아니다"며 "SK바이오사이언스가 독자적으로 개발해 미국에서 6000억 매출을 기록한 혁신신약이다. 국내에 도입될 경우 우리나라의 환자 접근성 강화를 위해 신약 허가 수수료를 올렸다는 명분을 가져갈 수 있기 때문에 세노바메이트가 1호가 될 것으로 본다"고 전망했다.
향후 과제는 '심사 인력' 충원과 '295일' 약속이 지켜지는 것
'신약 허가 혁신 방안'의 향후 과제는 뭘까. 업계 RA 담당자들은 식약처가 발표한 것처럼 신약 허가수수료 인상으로 편성된 예산으로 허가 심사관 충원이 조속히 이뤄져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중소 제약사 개발본부팀 관계자는 "이번 신약 심사를 진행하면서 느낀 점은 일선의 심사자들이 지침에 따른 심사 일정을 제대로 지켜주고 있다는 것"이라며 "그러나 그 외 구두 문의 요청 등에는 심사관들이 시간 부족으로 부담을 많이 가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밝혔다.
심사 인력 채용 등
투자 없이 품질 높이겠다는 것은
무모한 일
이어 "이런 상황이라면 신약에 대해 우선적으로 심사하고 여러 차례 대면 회의를 하며 많은 시간을 들여도 인력 부족으로 그 외의 심사는 지연될 우려가 있다"며 "전체적인 심사 인력 충원이 필요한 이유다. 투자 없이 품질을 높이겠다는 것은 무모한 일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히트뉴스가 식약처 허가총괄담당과에 정보공개 청구한 자료에 따르면 신약 허가 수수료 이후 추가로 채용된 심사관 인력은 22명인 것으로 확인됐다. 허가총괄과 측은 "현재 기준 총 22명을 채용 완료했고 8명은 채용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대형 제약사 개발부 관계자는 "2008년 이전에는 6만원이었다가 400만원으로 인상됐다"며 "식약처에 포진한 고도의 전문가들로부터 신약 허가를 컨설팅 받고 서비스를 받는데 수수료의 값어치가 상대적으로 낮았다는 뜻"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정당한 비용을 지불하고 정당하고 투명한 심사를 받겠다는 것이 업계의 숙원이었던 이유"라며 "제도 시행 9개월이 흘렀지만 22명 채용은 다소 부족한 수준이다. 신약 허가 수수료를 억대로 올렸더라도 양질의 심사 인력을 충원해 295일을 지켜준다면 그것이야말로 업계가 느끼는 진짜 혁신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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